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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s, Teaching & Presentations

[서교연 포럼] 사회적 재난재해・고통・외상의 문화적 구성: ‘문화적 외상’의 정치학과 재현 폭력 비판

by 사회학도

  재난재해 참사는 그것의 실체성 만큼이나 문화적감정적도덕적 사건이다. 재난 참사에 의한 고통은 사회적 재현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외상(trauma)’이 된다. 따라서 피해자희생자생존자유족이 겪는 사건과 고통은 단지 이들 당사자 개인의 주관적정신적생리학적자연적 ‘사고’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기억과 사회적 인정 속에서 ‘외상’으로서 재현되고 체험되는 사회적 사건이자 사회적 고통이다. 외상을 문화적인 재현 퍼포먼스의 구성물로 볼 때, 치유와 회복은 재난 참사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인정과 판단(진상규명 등)과 분리될 수 없는 실천적 과정이 된다. 

  이 발제는 외상과 참사를 어떻게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실천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를, 제프리 알렉산더 등의 ‘문화적 외상 이론’의 관점에서 해설한다. 어떻게 사회적 재난참사를 고통의 개별화와 책임에 대한 은폐 없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실천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자 한다. 아울러 국내외 문화적 외상 연구들을 소개하며 이것의 이론적정치적 함의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간이 지금도 연이은 참사의 현실 속에서 ‘애도의 정치’적 실천일 수 있기를 바란다. 

 

1. 외상이란 무엇인가? 문화적 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외상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에 의해 문화적으로 구성되며 집단이 경험한다(알렉산더, 2007/2003: 199). 외상이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말은 “외상에 대한 모든 ‘사실’이 감성적인지적도덕적으로 조정”된다는 뜻이다(알렉산더, 2007/2003: 77). 그래서 알렉산더를 비롯한 문화사회학자들은 외상의 본질이 사태 자체와 재현 사이의 간극에 있다고 주장한다. 

  외상은 집단이 상해와 고통을 경험한 결과가 아니라, 고통이 집단 정체성 의식의 핵심으로 파고든 결과이다(알렉산더, 2007/2003: 212). 그래서 외상은 정체성과 세상의 의미에 혼란을 주기도 하고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며 의미를 찾아 나선다(Hirschberger, 2018). 즉 외상은 집단의 행위자들이 고통을 자기정체성이나 도덕적 규범에 대한 위협으로 재현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사회적인 실재’가 된 것인데, 이에 따라 외상적 사건도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외상은 어떤 충격적 사태에 대한 자동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상징적해석적 매개와 집단적 행위들에 의해 의미부여되는 ‘문화적인’ 외상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문화적 외상은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집단의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서 그들의 기억에 영원히 자국을 남기고, 돌이킬 수 없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자신들 미래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끔찍한 사건을 당했다고 느껴질 때 발생한다”(알렉산더, 2007/2003: 197, 번역수정). 이러한 느낌은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 관계적인 - 감정이며 ‘집합적인 기억’(Halbwachs, 1980)이다. 

  그러므로 어떤 고통이나 상해, 사태는 그 자체로서 직접적이고 필연적으로 집단의 외상을 형성하지는 않는다(Gao, 2011 참조). 즉 우리가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건조차 외상으로 경험될 수 있다. 그리고 재난, 참사, 사건이란 그 자체로 ‘외상’을 남기는 외상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실시간 부여되고 과정적으로 재구성되는 귀속된 특징으로서 규정된다. “외상적 사건을 정의하는 공적 의미 투쟁은 사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인 것이다”(Madigan, 2020: 49). 

충격과 공포 의식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의미가 제공하는 것이다. 의미 구조가 흔들리고 충격받았는지의 여부는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과정의 효과이다. 이는 인간 행위(agency)의 결과이며, 새로운 문화적 분류 체계가 성공적으로 부여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 문화적 과정은 권력 구조 및 성찰적인 사회 행위자들의 우연적인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알렉산더, 2007/2003: 211).

 

그래서 심지어 어떤 사태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외상적 사건은 전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상상’(베네딕트 앤더슨)의 사건은 마치 민족주의 서사가 민족적 외상의 존재에 기대듯이, 실제 발생한 사건만큼이나 외상적일 수가 있다(알렉산더, 2007/2003: 209). 문화적 상상은 뒤르켐이 <종교적 삶의 원초적 형태>에서 ‘종교적 상상력’에 대해 보여주었듯이, 재현 과정에 본질적인 것으로 작용한다. 알렉산더에 따르면,

상상은 삶에서 불확정한 경험을 포착하고, 연상, 응축, 미적 창조를 통해 그것을 어떠한 구체적인 형태로 형성한다. 상상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사건만큼이나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외상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상상적인 재현 과저을 통해서만 행위자들은 경험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된다. 희생자들의 주장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고, 정치적으로 민주적이며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경우에도 여전히 이러한 주장은 사건 자체의 실제 성격에 대한 자동적인, 즉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볼 수 없다(알렉산더, 2007/2003: 210-11).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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